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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가톨릭신문 2017.06.20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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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와 일치 특집] 한반도, 평화체제로 전환하자


■ 정전협정과 평화협정

매년 6월 25일 무렵이면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하루빨리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자주 등장한다. 정전협정은 무엇이고 평화협정은 무엇이기에 해마다 입에 오르내릴까.

정전협정은 교전 중에 있는 당사자가 일시적으로 전투를 중단하기로 합의해 맺는 협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50년 일어난 6·25전쟁을 멈추기 위해 1953년 7월 27일 미국·북한·중국이 한국에서의 적대행위와 모든 무장행동의 완전한 정지를 목적으로 정전협정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전쟁은 3년1개월 만에 중단됐다.

하지만 잠시 전쟁이 멈춘 것일 뿐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이 정전협정 결과 38선 부근에는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DMZ)가 생겼다. 또한 스위스·스웨덴·체코슬로바키아·폴란드 등으로 구성된 중립국감시위원단이 설치됐다. 감시위원들은 정전협정 위반 여부를 감시한다. 현재는 스위스·스웨덴만 남았다. 2000년 개봉 됐던 화제작 공동경비구역 JSA에는 한국계 스위스인 소피 소령(이영애 분)이 등장하는데, 중립국감시위원단 소속이다.

평화협정은 전쟁을 치른 당사자들이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회복하기 위해 맺는 협정이다. 정전협정이 언제든 전쟁이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불안요소를 지니고 있다면, 평화협정은 전쟁을 끝낸다는 측면에서 전쟁 불안요소가 없는 협정인 셈이다. 남북 양측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을 정전협정 당사국인 미국·중국과 함께 시도한 적이 있다.

남한과 북한은 미국·중국과 1997년 12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첫 4자 회담을 시작으로 1999년 8월까지 6차례 회담을 열었다. 한반도 긴장완화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문제를 다뤘으나 별 성과 없이 회담이 끝났다.




■ 평화체제 촉구 목소리들

한국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해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처음 나온 것은 2003년 7월이다.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 50주년이 되는 시점에 전국 13개 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연대서명을 통해 평화협정 체결을 촉구하고 나서면서 한국교회 평화운동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교회 안팎의 움직임은 이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남북 분단 70주년이었던 2015년을 기점으로 평화협정 체결 필요성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이은형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는 "자기검열이 있었다"고 말했다. 평화협정 체결이 한반도 분단을 고착화시킨다는 문제제기와 북한을 주적이나 흡수통일의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보수층의 반대 여론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보수층에서는 북한을 평화협정 체결의 당사자로 인정하는 것조차 거부해 왔다
.
주교회의 민화위가 6월 1일 의정부교구 일산성당에서 한반도 분단, 이제는 평화체제로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면서 평화체제 전환 논의 공론화를 위한 시동을 건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 신부는 "합리적 사고를 막는 정전체제가 60년 넘게 흘러와 촛불과 태극기로 상징되듯 한국사회는 극단적으로 양분됐고 분단 상황이 정치적으로 악용돼 온 것이 사실"이라며 "통일이 우리가 살 길임은 분명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통일을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평화체제가 세워진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남북 교류와 협력이 이뤄지는 과정을 거쳐 통일이 돼야지 통일이라는 목표만을 앞세운다면 통일이 대박이 될 수 있는 만큼 재앙도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기원 신부(광주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도 "현재의 한반도 분단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꿔야 한다는 원론적인 논의를 넘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와 방법으로 평화체제를 만들어 갈지 교회가 제시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아직까지 정부나 교회는 한반도 평화체제로 가는 가시적인 로드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 분단과 정전체제의 폐해를 집중 연구해 온 김학재 교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는 평화체제 구축 로드맵의 핵심을 한반도 비핵화에 두고 ▲2~3년간 북핵의 완전 동결 ▲이후 5년간 북핵 동결을 비핵화로 전환하기 위한 다자주의, 교류협력 ▲이후 5년간 한반도 비핵화 달성, 동북아 군축 논의 ▲이후 남북 평화체제를 위한 동북아 평화협정 순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 제안대로 이뤄지더라도 평화체제가 들어서는 데는 최소 15년 가까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임을출 교수(베드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역시 "북한 체제를 인정하고 남북 교류협력을 고민할 때에야 평화체제를 향한 첫 발을 내디딜 수 있다"고 말해 평화체제 구축이 쉽지 않은 여정임을 시사했다.



■ 평화협정 사례들

한반도는 1953년 발효된 정전협정으로, 전쟁의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 않고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평화협정을 통해 평화체제로 한 발 더 나아간 국가들의 사례는 어떨까.

평화협정을 맺은 분쟁국가로는 레바논을 꼽을 수 있다. 한때 중동의 보석이라 불리다 중동의 화약고가 된 레바논은 마론파 공동체, 그리스정교 공동체, 그리스 가톨릭 공동체, 드루즈 공동체 등 다양한 종파가 섞인 조각 국가로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레바논은 프랑스에서 독립한 이후 각기 다른 이해관계로 대립했으나 1943년 맺은 국민협정(National Pact)으로 일차적인 갈등과 대립을 중재했다. 이후 1975~1989년 이념 차이로 인해 벌어진 내전으로 약 25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 많은 인명피해와 정신적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분쟁 당사자들이 전쟁으로는 아무런 해결책을 찾을 수 없고 고통만 지속될 뿐이라는 깨달음에 공감하면서 1989년 타이프 협정 체결로 종파 간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었다.

2016년 한반도평화나눔포럼에 참석한 벱싸라 부트로스 라이 추기경(중동 및 안티오키아 마로나이트교회 수장, 총대주교)은 "레바논의 공존공생 형태는 중동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전쟁을 해결하는 데 훌륭한 모범이 된다"고 말했다.

국제사회는 레바논 내전과 평화협정을 평가하면서 평화협정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동티모르도 폭력과 테러의 갈등 속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 분쟁을 멈추고 평화로운 체제로 향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1999년 동티모르는 친정부 무장민병대가 폭탄과 총기를 난사해 25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동티모르 내에 테러에 대한 불안이 높아지고 혼란스러운 상황이 야기됐다. 이에 동티모르는 불안한 상황과 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되찾기 위해 평화협정을 맺었다. 평화협정은 당시 카를로스 벨로 주교(Carlos Belo·전 동티모르 딜리교구장) 관저에서 ▲분쟁 당사자 간의 모든 적대 위협 및 테러 행위 중단 ▲평화체제 구축 만남 ▲동티모르인에 대한 안정 보장 등의 내용으로 체결돼 평화로 난 새로운 문을 열어놓았다.

서로에 대한 분노와 불안은 전쟁을 통해서는 해결할 수 없다. 전쟁은 또 다른 전쟁을 낳고 평화와는 거리가 더욱 멀어질 뿐이다. 전쟁 종식은 상대를 무력으로 제압하는 군사적 대응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대립된 관계에 서 있는 당사자들이 서로의 이해관계를 대화를 통해 함께 풀어나갈 때 평화체제로 나아갈 수 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
조지혜 기자 sgk9547@catimes.kr
권세희 기자 se2@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