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사자 대기실에서 동료 봉사자들과 공연을 준비 중인 배영희씨.(왼쪽) |
차가운 빗장이 풀리고, 철문이 삐걱 소리를 내며 열린다. 서울구치소 안으로 들어서면,
특유의 분위기가 훅 끼친다. 철문 닫히는 소리에 등 뒤로 싸한 냉기가 느껴진다.
서울구치소 남사(男舍) 책임봉사자 배영희(헬레나, 67, 서울 방배동본당)씨는
조금이라도 수용자들에게 따뜻함이 전해지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봉사하며 함께해
왔다. 고등학교에서 독일어 교사로 재직하다가 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008년
11월 서울구치소에 왔으니, 벌써 10년째로 접어든다.
봉사 일정은 생각보다 단출하다. 매주 수요일 오후 1시 구치소 남사에서 집회하거나
미사를 봉헌한다. 매달 첫 주엔 집회를, 나머지 주엔 미사를 봉헌한다. 미사야 당연히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 위원장 김석원 신부가 주례하지만, 자잘한 준비는
다 봉사자 10여 명의 몫이다. 특히 음악회나 복음 묵상 연주회, 강연, 노래
자랑 등 명목으로 집회할 때면 준비할 게 한둘이 아니다. 미사 안내나 성경 공부,
교리 지도 봉사 또한 다 봉사자들이 해야 한다. 배 봉사자는 이들과 함께하며 구치소
수용자들을 보살핀다. 특별히 해주는 건 없다. 함께하려는 마음 그뿐이다. 이
밖에 한 달에 한 번은 교정사목센터에서 책임봉사자 회의를 하고, 또 후원회 모임에
참석한다.
7일에는 현악 실내악단인 아카데미 앙상블이 봉사를 왔다. 평소 미사 때보다
1시간쯤 일찍 들어가기 위해 연주자들은 대기실에서 봉사자들이 준비해온 김밥으로
점심을 때운다. 봉사자들도 재빠르게 점심을 때운다.
이쯤에서 왜 봉사를 하는지 궁금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하기보다는 그냥 봉사가 생활이 됐다고나 할까요?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봉사를 오지 않으면 허전해요. 어느 해인가, 겨울에 눈이 하도 많이 와서
운전할 수 없을 정도였는데도 차를 끌고 벌벌 떨면서 길 없는 길을 달려 구치소에
왔어요. 지각하긴 했지만, 저희를 기다리고 있을 갇힌 형제들을 생각하면 오지
않을 수 없었어요. 저희야 일주일에 한 번 봉헌하는 미사이고 만남이지만, 그분들은
일주일을 기다려요. 미사에 참여하려고요."
배 봉사자는 그렇다고 해서 "굳이 뭘 해주려고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저
"함께 미사에 참여하고 같이 있어줄 뿐"이라는 것이다.
봉사하게 된 이유도 단순했다. 우연히 서울주보를 보다가 같은 본당에 다니던
조영옥(실비아, 64)씨와 "한번 봉사해 보자"고 의기투합한 게 계기가 됐다. 다음날
당시 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 위원장 이영우 신부를 찾아가 인터뷰하고, 다음날부터
봉사했다. 서울구치소에서만 그렇게 매 주일 한 차례씩 10년을 하루같이 살았다.
배 봉사자는 이제 "구치소 미결수나 기결수들이 꼭 형제 같고, 아들 같다"며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 죄인 아니냐"고 반문한다. "물론 순간의 잘못이야 있었겠지만,
회개를 통해 신앙의 기쁨을 찾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움이 앞선다"고 했다. 배 봉사자는
"앞으로도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재소자들을 위해 도움이 되는 순간까지, 힘닿는
데까지 봉사하며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