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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사회
가톨릭평화신문 2017.08.16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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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으로] 최저임금인상과 의자 뺏기 게임
이상도 요한 사도



10여 년 전 미국 워싱턴에서 약간의 문화적 충격을 느낀 적이 있다. 편의점에 가서 물건을 고른 뒤 계산을 하려고 봤더니 한 줄만 점원이 있고 나머지 2줄은 점원이 없었다. 현지인들은 무인 계산대에서 바코드를 찍은 뒤 현금이나 신용카드로 계산을 했고 여행객들이나 노인들은 주로 점원을 통해 계산을 했다. 그 당시만 해도 무인 계산대가 흔하지 않던 시기여서 미국의 편의점이 꽤 인상적으로 보였다.

얼마 전 공무원들의 도시 세종시에 있는 대형마트 홈플러스에 갔다. 세종시 유일의 대형마트라 서울에 있는 대형마트에 비해 매장 크기나 물건의 다양성이 결코 뒤지지 않았다. 특징 중 하나는 무인 계산대가 따로 마련돼 있다는 점이다. 상당히 익숙한 듯 많은 사람들이 무인 계산대에서 스스로 바코드를 찍고 물건을 담아서 계산을 끝냈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런 무인 시스템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음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곳이 고속도로 톨게이트다. 과거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는 차들이 길게 늘어서서 요금 징수원들에게 통행료를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지만 최근 출시된 차량은 모두 하이패스 기능이 장착돼 있어 징수원들에게 돈을 낼 필요가 없어졌다. 그냥 하이패스 차로를 통과하면 될 뿐이다.

국회 의원회관 식당도 음식값 계산은 기계가 한다. 먹고 싶은 메뉴를 선택한 후 카드로 긁고 출력된 표를 들고 가 밥을 먹으면 그만이다. 최근 서울 외곽과 일산, 김포 등에 있는 주유소 가운데 기름값이 좀 싸다 싶은 곳은 거의 대부분이 셀프 주유소다. 1~2년 전과 달리 이제 일부 주유소에서는 셀프 주유가 더 익숙한 시대가 됐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면 과거 그 일은 누군가 하던 일이었다. 대형마트 계산원, 통행요금 징수원, 식권 판매원, 주유원처럼 어엿한 이름을 가진 직업이었다. 세상이 바뀌고 기술이 진보하면서 이런 직업들이 점점 없어지는 것은 시대의 흐름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문제는 그런 일자리가 없어진다고 해서 어디서 다른 일자리가 그냥 생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8월 4일 고용노동부가 2018년도 최저임금을 7530원으로 고시했다. 정부가 몇 년 안에 최저임금을 만 원으로 올리겠다는 방침이어서 앞으로 최저임금은 더 가파르게 오를 것이다. 의자 뺏기라는 게임이 있다. 이 게임에서 의자의 수는 참가자보다 항상 적다. 누군가는 의자를 차지하지 못해 탈락해야 하는 게 게임의 핵심이다.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를 경우 시장은 의자 뺏기 게임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어떤 고용주든 총수입, 총매출이 늘어나지 않는 한 늘어나는 비용을 기계화를 통해 상쇄하려는 유혹을 받게 된다. 얼마 전 경기도 모 아파트에 붙은 경비원 운영방식 변경안은 경비원을 줄이자는 게 핵심 내용이다. 현재 34명인 경비원을 25명으로 줄이고 연령대를 70세 안팎으로 낮춰 총 인건비 액수를 현 수준으로 동결하거나 줄이자는 게 핵심이다. 물론 인력이 줄게 되면 나머지 업무는 기계가 차지할 것이다. 안 그래도 로봇, 알고리즘, 인공지능 같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간의 일자리는 더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의자 뺏기 경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인상된 최저임금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많은 자리가 기계의 몫으로 돌아간다면 최저임금인상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상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