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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복음/말씀
가톨릭평화신문 2017.09.13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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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사 이야기] (16) 김승월 프란치스코 시그니스 아시아(아시아 가톨릭커뮤니케이션 협회) 이사
피레네 산맥에서 올린 미사



오산이었다. 가톨릭국가 프랑스에서는 미사를 올린다면 누구나 환영해 주는 줄 알았다. 순례길 산장에서라면 극진한 대접까지 받는 줄 알았다. 프랑스 생장에서 스페인 산티아고에 이르는 800여㎞ 순례길 초입, 피레네 산맥 오리손(Orisson) 산장에서, 미사 장소를 부탁했다가 거절당했다. 신부님을 모시고 내일 새벽 미사를 올리겠다고 은근 자랑스럽게 말했다가 무안당했다. 1층 식당은 손님 모두가 쓰는 공간이니 안 된다기에, 2층 숙소에서는 되냐고 했더니 같이 머무는 투숙객 때문에 쓸 수 없다고 했다. 좁은 공간이라도 어디 없느냐고 재차 물었더니, 쌀쌀맞게 고개를 저었다.

"산장 앞 쉼터에서 하지요." 씩씩거리는 나에게 신부님은 아무렇지 않은 듯 그리 말했다. 산장과 길 하나 사이 두고 골짜기 쪽으로 테이블과 의자 몇 개 있는 걸 봐 두었단다. 순례자들이 지나가다 쉬어가는 곳이다.

3년 전 일이다.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이 산티아고 순례에 나선다는 소식을 들었다. 예순이 한참 넘은 신부님이 먼 길 혼자 떠나는 게 안쓰러워 박용대 이냐시오 형제가 따라 나섰다. 신부님보다 세 살 위지만 몸은 더 다부진 분이다. 예순에 갓 들어선 나도 순례 도우미로 나섰다. 여행 경험이 조금 더 있기에 도움될 듯했다. 대학교 강의가 걸려있어 보름만 같이 하기로 하고 떠났다.

순례는 시간표대로 정확하게 진행되었다. 신부님은 새벽 2시 30분이면 어김없이 깨어났다. 불 꺼진 캄캄한 공동 숙소에서 헤드 랜턴을 켜고 아이패드에 그날 강론을 써서 요셉수도원 홈페이지에 올렸다. 5시 전후에 미사를 올리고 아침 먹고 6시 전에 순례에 나섰다. 미사 장소를 잡는 건 도우미 몫. 전날 밤 숙소 관리하는 분께 묻거나, 눈치껏 정했다. 주로 식당, 휴게실, 때로는 복도에 자리 잡았다. 스페인과 프랑스는 가톨릭 국가이고 순례지 산장 봉사자들은 대부분 친절했는데, 그날처럼 예외도 있었다.

2014년 8월 26일 새벽 5시. 숙소를 나서니 가을 풀벌레가 낮은 소리로 울고 있었다. 피레네 산맥의 새벽은 차갑고 캄캄했다. 한 점 불빛도 없어 하늘과 땅이 한 덩어리처럼 느껴졌다. 전날 만난 한국에서 온 신혼부부도 나왔다. 모두 다섯이 둘러앉았다. 신부님과 이냐시오 형제가 헤드 랜턴을 켰다.

"찬란한 별빛 가득 쏟아지는 새벽 2시, 해발 800m 오리손 산장에서 강론을 씁니다…." 이수철 신부님은 이날 새벽 미리 써 둔 강론을 읽었다. 나직한 신부님 음성이 어둠 속으로 퍼져나갔다. 골짜기 밑에서 바람 소리인지 물소리인지 무슨 소리가 울리는 듯했다. 미사를 마치고 고개 돌리니 어느새 연분홍 새벽 노을이 산등성이를 타고 번지고 있었다.

"온 우주가 함께한 미사 같습니다." 이냐시오 형제가 들뜬 소리로 말했다. 피레네 산맥을 제대 삼아 모든 피조물과 함께한 미사였다. 쌀쌀맞은 오리손 산장지기 덕분에 은혜로운 미사를 올릴 수 있었다니, 재수 없다가 횡재한 듯 모두 즐거워했다. 신부님도 웃으며 거들었다. "우리 말고, 피레네 산맥에서 미사 드린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요."

어느 곳이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처럼, 어느 곳에서나 미사를 올릴 수 있다.

※나의 미사 이야기에 실릴 원고를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8매 분량 글을 연락처, 얼굴 사진과 함께 pbc21@cpbc.co.kr로 보내 주시면 됩니다.